15세기
 

우리 인간은 적어도 2백만 년 전에 이미 암석으로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원전15000년에 이미 금과 구리를 처음 사용한 흔적이 있고, 기원전 9000년에는 흙(흙은 암석이 풍화작용을 받은 산물)을 사용하여 토기를 만들었으며, 기원전 4000년에 청동기시대를 열었다. 암석의 기원에 대해 의문은 그리스와 로마시대(기원전 8세기~기원후 5세기)의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묘한 암석이나 금, 구리와 같은 금속 등을 중심으로 이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을 제시하지만 암석이 지하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지구도 사람과 같이 신진대사(Earth metabolism)를 하고 나무에서 열매가 자라듯이 암석도 어떤 씨앗으로부터 만들어졌으며, 나무에서 열매나 꽃이 피어나듯이 구리나 아연이 만들어졌고, 과일이 익듯이 시간이 지나면 구리나 아연 같은 금속이 금과 은으로 바뀐다는 것을 믿었다. 이러한 생각은 15세기 이전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5세기까지 사람들은 금이나 은과 같은 유용한 광물을 가진 광상을 찾기 위해 포크 형태의 신성한 개암나무가지를 사용하였다. 

20~21세기

20~21세기에 이르러 암석학을 연구하기 위한 많은 자료가 지화학(地化學, geochemical), 지구물리학(地球物理學, geophysics), 야외암석학, 광물과학, 동위원소지질학(同位元素地質學, isotope geology) 등의 분야에서 축적되었다. 더욱이 자연과 유사한 고온고압의 실험실에서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맨틀과 핵에 대한 연구, 열역학적 분석과 적용, 조구조적 판의 이동,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해 암석학은 놀라운 진전을 가지게 된다. 




Abraham Gottlob Werner

아브라함 고틀로프 베르너





17세기까지도 지구의 모든 모습은 성경에 의해 해석되었으며, 지구는 하나님에 의해 6일 동안에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전 세계인의 생활양식뿐만 아니라, 성경에 의거한 많은 생각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기술혁신을 통해 근대적인 산업 발전을 이루게 되는 산업혁명의 과정에서 막대한 지하자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지하자원을 찾고 물류를 운반하기 위해 광산을 개발하고 운하를 만드는 기술도 발달하게 된다. 이를 위해 광산업자들과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암석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 습득 및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시작되었다.

그 중에 독일의 Saxony 지방 Freiberg 대학의 광산학 교수이면서 광산 전문가였던 아브라함 고틀로프 베르너(Abraham Gottlob Werner)는 야외에서 암석을 조사하다가 암석에는 순서를 보이는 층리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관찰을 토대로 아브라함 고틀로프 베르너(Abraham Gottlob Werner)는 모든 암석은 물에서 형성되었다는 ‘수성론(neptunism)’을 주장하게 된다. 아브라함 고틀로프 베르너(Abraham Gottlob Werner)의 수성론은 성경의 대홍수를 연상시킴으로써 그 당시 사람들의 공감을 받아내어 인기가 매우 높았다.

그러나 아브라함 고틀로프 베르너(Abraham Gottlob Werner)를 비롯한 수성론자들은 곧 영국 스코틀랜드의 농부이면서 사업가인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에 의해 반격을 당한다. ‌


AND

James Hutton

제임스 허턴


화성론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은 베르너와 정반대 이론인 ‘화성론(plutonism or vulcanism)’을 제시한다. 화성론의 증거가 되는 Glen Tilt 계곡에서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은 하나의 암석이 다른 암석을 관입하고 절단하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게 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의 화산 폭발을 직접 목격한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은 이 두 암석 중에 하나는 마그마(magma), 즉 액체여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암석을 만드는 데는 물뿐만 아니라 열도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은 매우 예리한 관찰력을 가졌으며, 물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은 자신을 점령하고 있던 이전의 선입견, 편견에 의해 방해 받지 않는 아젠다를 끄집어 낼 수 있었던 이론가였다고 평하고 있다.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이 먹고사는 일을 고민하지 않고 자연을 탐구하는 일에 일생을 바쳐도 좋을 만큼 부자였던 것도 지질학을 마음 놓고 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였다.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은 자연의 관찰을 하는 데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한 사람으로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의 화성론을 시작으로 근대 지질학은 시작되었다.

동일과정설
동일과정설이란 현재 우리가 관찰하는 자연의 모든 변화와 과정은 과거에도 동일하게 일어났고, 앞으로도 동일할 것이며 이는 전 우주에 적용된다는 학설이다.
 
1788년 영국의 왕립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은 “no vestige of a beginning-no prospect of an end(현재의 연구 결과는 시초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고 끝을 관찰할 수도 없다.)”라는 표현을 한다.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의 이러한 생각은 스코틀랜드의 시카 포인트(Siccar Point)에서 시작이 되었다.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은 이곳에서 거의 수직으로 서 있는 하부층과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상부층과의 접촉부를 관찰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보고 그저 그런 암석덩어리라고 생각했지만,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은 이 접촉부에 대해 예리한 관찰을 하였으며, 이것이 굉장히 오래된 시간적 간격을 가진 침식면이라는 것을 인지해냈다.
 
이 침식면을 부정합면이라고 하며 하부층이 상부층에 의해 덮이기 전에 오랜 기간의 지질학적 사건을 경험하였음을 입증하게 된다.
 
동일과정설이 암석학의 핵심원리로, 근대 지질학의 기초로 자리매김을 하면서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은 현대 지질학의 아버지로 평가받게 된다. 동일과정설은 암석학, 지질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의 모든 분야의 핵심적인 원리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현재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의 이름을 딴 학술회의도 있다. 제임스 허턴(James Hutton)의 동일과정설 이후 암석학은 정성적인(qualitative) 관찰의 과학에서 정량적인(quantitative) 과학으로 발전하게 된다.